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피아노 소나타 29번(베토벤) (문단 편집) == 작곡 배경 == 이 작품은 대략 1817년 6월 경에 작곡을 시작해서 이듬해 초 경에 첫 두 악장이 먼저 완성되었다. 이후 잠시 작곡이 중단되었다가[* 작곡 자체를 중단하고 그냥 놀고 있었던 것은 아니고 다른 작품들을 쓰고 있었다.] 같은 해 여름 자신의 조카 카를과 휴가를 떠났을 때 다시 작곡에 착수하여 가을 쯤에 완성되었다. 한편 베토벤은 휴가를 떠나기 직전에 런던의 피아노 제조업자인 브로드우드(Broadwood)로부터 최신식 피아노 한대를 선물 받았다. 이 악기는 영국에서는 포르테피아노(Fortepiano)라고 불렀고 독일에서는 함머클라비어(Hammerklavier)라고 불렀는데, 오늘날의 피아노처럼 건반을 누르면 일종의 나무망치가 현을 두들겨서 소리를 냈기 때문에 '''망치 + 피아노(Hammer + klavier)'''라고 부른 것이다. 이 피아노는 당시의 다른 피아노에 비해 음량도 크고 울림이나 서스테인 등의 음향 효과도 진일보한, 당시 기준으로 보면 최첨단의 악기였다. 그래서 베토벤이 이 피아노의 성능에 걸맞는 작품을 쓰고 싶은 야심 때문에 '함머클라비어'라는 대작 소나타를 구상했다는 설도 있었다. 하지만 전술한 것처럼 29번 소나타는 이 피아노를 선물 받기 전에 이미 두 악장이 완성되어 있었다. 게다가 그 시기의 베토벤은 안타깝게도 귀가 거의 완전히 멀어서 아무리 좋은 악기가 있어도 실제로 음향을 들을 수는 없었고 머리 속으로 상상만 해야 했다. [[파일:external/4.bp.blogspot.com/DSCN6518.jpg|width=400]] * 함머클라비어 소나타 작곡 당시 베토벤이 사용한 [[https://s-media-cache-ak0.pinimg.com/236x/45/36/4f/45364fb7567908ae33954ee88cf4d0ea.jpg|브로드우드사의 피아노]][* 이 피아노는 베토벤이 직접 받았던 브로드우드사의 피아노를 후대에 복원한 것이다.] 이 작품은 작곡에 착수한 지 2년 만인 1819년 빈의 아르타리아(Artaria) 출판사와[* 자필 악보를 출판업자인 아르타리아(Artaria)에게 건네면서 베토벤이 "여기 50년이 지난 후 피아니스트들이 도전하게 될 소나타가 있소."라고 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런던에서 동시에 출판되었으며 루돌프 대공[* [[올로모우츠|올뮈츠]] 대주교이자 [[추기경]]으로 당시 [[오스트리아 제국]]의 황제였던 [[프란츠 2세|프란츠 1세]]의 막내동생이다. 베토벤 최대의 후원자이자 제자였다.]에게 헌정되었다. 특기할 것은 1816년에 썼던 28번 소나타에도 '함머클라비어'를 위한 소나타는 부제가 붙어 있었는데, 현재에는 이 29번 소나타만 '함머클라비어 소나타'로 부르고 있다. 물론 28번 소나타도 상당히 훌륭한 작품이지만 29번이 워낙 독보적이기 때문에 따로 별명을 붙인 듯 하다. 베토벤 생전에 공식적인 초연이 있었는지 연주자는 누구였는지 등에 대해서는 기록이 전혀 없으며 작곡가 본인이 지인들 앞에서 시범적으로 연주한 정도의 정황만 남아 있다. 사실 베토벤 당시의 건반악기 연주 기술로 이런 난해한 곡을 제대로 연주한다는 것은 언감생심이었기 때문에 이 작품이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위해서는 피아노의 거장들이 본격 활약하는 낭만주의 시기까지 기다려야 했다. 현재 기록상으로 확인되는 이 곡의 최초 연주자는 바로 [[프란츠 리스트]]로 베토벤 사후 9년 후인 1836년 프랑스 파리에서 이 곡을 연주했다. 당시 파리의 청중들에게 이 소나타의 4악장은 말그대로 [[충공깽]] 그 자체였다고.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